www.tourmentor.org www.knpc.co.kr gifted.jnu.ac.kr www.besttire.co.kr chuncheon.kopo.ac.kr www.cwkc.net shop.morecorp.co.kr www.pgma.co.kr www.golfway.kr www.onetwokids.co.kr www.dongilled.net www.kafe.or.kr www.ilovehistory.or.kr www.wildrush.co.kr www.pabburi.co.kr www.wcis.or.kr clinic.jhc.ac.kr hyunnet.com www.kcachina.com www.dnemold.co.kr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아가페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성경연구
  성경의 기원
  한글 성경의 역사
  대표적인 영어성경
  성경개관
  기독교일반
  생명윤리
  기독교 이단
  교회사(敎會史)
Untitled Document
세계교회사   한국교회사  

한국기독교의 역사(개신교)
(출처 : 기독교대백과사전, 한국기독교100년사)

세계 교회사 (출처: 네이버 카페 <호주성산 역사신학 연구실> http://cafe.naver.com/historyth.cafe)
 
  한국교회사
 

1. 한국 기독교전사(1830~1884)

이 시기는 한국과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접촉하는 시기이다. 또한 조선 말 세도정치로 국정과 민생이 문란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1832년 충청도 서해안 고대도(古代島)에 한달 가량 정박하여 조선에 통상과 선교허가를 요구한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암허스트호가 그 첫 접촉이며, 여기에는 복음루터교 선교사 귀츨라프(K. F. A. Gutzlaff, 1803~1851)가 승선하고 있었다.
그 후 수년간 조선과 개신교의 접촉이 없다가, 1866년에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인 토머스(K. J. Thomas) 목사가 미국 상선 제네럴셔먼 호를 타고 대동강에 진입했다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토머스는 죽는 순간까지 한문성경과 전도지를 뿌리며 선교했던 것으로 전한다. 이렇게 비밀스럽고 혼란한 선교접촉의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1870년대 이후 만주 주재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선교사 로스(J. Ross)와 맥킨타이어(J. Mchintyer)가 한국인 협조자 서상륜(徐相崙). 이웅찬. 이성하. 백홍준(白鴻俊). 김진기 등과 함께 한글성경 번역에 착수하고 한국인 협조자들은 그들이 번역. 발행한 쪽지복음서를 지니고서 한국전도행에 나선 것이다.


2. 선교실현기(1885~1904)

1884년 9월 중국주재 미국북장로회 선교사였던 알렌(H. N. Allen)이 내한한 것을 시초로 동년 6월에는 미국감리회 일본선교회 선교사 매클레이(R. S. Maclay)가 한국을 방문하여, 고종 임금으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한 선교활동의 윤허를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1885년 부활절에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언더우드(H.G.Underwood)와 미국감리교 선교회 아펜젤러(H.G.Appenzeller) 선교사가 내한하여 활동하였다. 이로써 한국개신교 선교의 본격적인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초기 복음선교사들이 입국시에 일본에서 한국인 개종자 이수정이 한국어로 번역한 [마가복음서(마르코 복음서)]를 지니고 있었고, 만주의 성경번역팀과 그 매서인 서상륜, 이성하 등에 의해 이미 1884년경 황해도 일대와 경기도 소래에 개신교 신앙공동체가 조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기반으로 초기 선교사들은 선교사업을 활발히 전개시켜 나갔고, [네비어스선교방법]으로 대표되는 선교형태에 있어서도 성공을 거둔 바가 있다.


3. 교회부흥과 신앙유형의 정립기(1905~1910)

이 시기는 한국내 선교활동이 거의 완료된 시기로써 1907년의 기독교 대부흥운동이 일어나자 한국기독교가 보다 종교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즉 신앙운동과 사경회가 활발해졌으며, 여러 교회들이 속속 건립되었던 것이다. 이는 한일합방이라는 민족적인 좌절에 직면하여 한국기독교가 그 신앙적인 극복의 길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이 시기에는 성결교단의 전신인 '동양선교회복음전도관'이 창설되어 활동을 하였다.


4. 한국교회의 수난 시작(1910~1919)

이 시기의 한국교회는 민족의식으로 무장하여 일제의 지배에 항거한 것이 특색이다. 한국의 교회는 민족주의 색채를 띤 불순분자로 지목되어 일제통치 초기에 혹심한 탄압대상이 되었다. 일제는 1907년을 전후하여 보안법, 신문지법 등을 만들어 반일적 색채를 지닌 여러 계몽운동을 탄압하였으며 해서교육총회 사건, 105인사건, 신민회 와해, 일본조합교회의 조직적인 침투 등으로 한국기독교의 괴멸을 꾀하였다. 이에 따라서 한국교회는 한때 위축되었고 보다 내세지향과 안정추구의 길로 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1919년 3.1운동에 있어서는 천도교와 더불어 적극적인 참여와 주도의 역할을 다했고 이 때문에 일제로부터 받은 보복과 피해도 그 정도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심했다.


5. 사회변화와의 대결기(1919~1929)

이 시기는 3.1운동 이후의 사회 각 계층의 변화와 민족적 자각, 사회주의의 본격적 도전,일제의 식민정책의 심화로 인한 민족경제의 피폐 등에 있어 한국기독교의 적절한 대응이 늦거나 부족했다. 또한 일부 기독교인들이 일제에 타협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에 따른 기독교비판, 소종파적 신앙운동 등이 일어나고 한국교회는 그 내?외적 시련을 크게 경험하기 시작했다. 한편 YMCA, YWCA등 일부 기독교단체는 민족계몽운동을 꾸준히 진행하기도 하였다.


6. 신비주의적 경건기(1930~1940)

이 시기는 일제의 한국지배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이다. 20년대 이후로 세속사회와의 갈등, 민족주의의 퇴조, 사상적 혼란, 일제의 무단통치 안에서의 부적응 등에 시달리던 한국 개신교회는 일종의 신비주의 신앙운동, 신앙재정립, 말세주의 신앙지향, 부흥회 등으로 경건의 모습을 되찾아 일말의 돌파구를 찾아나갔다.


7. 극심한 수난기(1940~1945)

이 시기는 일제통치 말기로써 한국기독교가 가장 큰 시련을 겪었던 시기이다. 1936년에 천주교회에서 신사참배 성명서를 발표한 것을 시초로 개신교의 일부 교파들도 뒤이어 신사참배에 동의하였고, 신사참배에 반대한 주기철 목사 등이 투옥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는 일제 말기 신사참배 강요와 기독교의 본질을 말살하려는 기도, 민족정기 말살책의 시련 앞에서 일부는 순교적 투쟁으로 항거하였고, 다른 일부는 도피로, 그리고 철저한 친일협력으로 나뉘는 민족교회의 와해가 진행되었다.


8. 해방과 교회의 재건기(1945~1957)

이 시기에 한국교회는 또 한차례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945년 8월 15일에 한국은 해방과 동시에 종교적 자유를 되찾았으나 얼마 못가 남북분단과 북한공산정권 하에서 기독교가 수난을 당했으며, 6.25사변의 발발로 인한 각종 피해, 재건과정의 혼란과 기성교단 분열, 자유주의 신학사상 대두, 정치적 혼란, 각종 이단종파의 출현 등으로 한국교회가 또 다른 시련을 겪어가며, 한편으로는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과의 유착으로 일부 종파가 특권적 혜택을 누리기도 한 시기이다.


9. 한국교회의 팽창과 자의식발전기(1958~1987)

한국기독교는 광복과 6.25를 경험하면서 자의식이 상당히 발전하였다. 또한 이때는 한국개신교가 양적으로 팽창을 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한국교회는 교회 내적으로 NAE 대 에큐메니칼 논쟁, 교단분쟁 등을 겪으면서 교회 안팎으로 역사적 반성이 촉구되고 한국신학의 수립을 위한 노력, 초교파적 부흥집회, 대규모전도운동 등을 통한 양적 발전을 보였으며, 산업선교. 군종선교 등 특수분야 선교와 사회적인 책임에 대한 자각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특히 1984년에 한국기독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민족교회사에 대한 자각과 미래교회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요청받게 되었다.


10. 한국교회의 성숙기(1988~현재)

한국교회는 21세기에 들면서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한국기독교는 1985년을 고비로 교회성장세가 많이 낮아지고 있다. 즉 한국교회는 종전의 양적 성장국면에서 질적 개선과 성숙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1987년의 민주화와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하여 자의식이 거의 대부분 성립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와 북한선교를 통하여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를 향한 전진을 계속해야 할 줄로 믿는다.